여왕은 직접 횃불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백성 수천 명을 쇠사슬에 묶어 끌고 갈 수도 있었던 배들이 불길에 삼켜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함대를 불태운 여왕

포르투갈 노예상들로부터 왕국을 지키기 위한 응징가 음반디의 필사적인 승부수

응징가 여왕은 포르투갈 노예상들이 자신의 백성을 잡아가는 데 함대를 이용하느니, 차라리 직접 불태워버리는 쪽을 택했다.

1626년 4월 16일, 콴자 강 위로 짙고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은동고의 여왕 응징가는 자신의 전투용 카누들이 타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었다—전략이었다. 포르투갈인들은 그녀의 함대를 손에 넣어 아프리카 내륙 깊숙이 침투할 계획이었다. 그들의 배에는 이미 인간 화물이 가득 실려 신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오직 잿더미뿐, 그리고 물 건너편에서 울려 퍼지는 여왕의 도도한 웃음소리뿐이었다.

응징가 음반디가 물려받은 것은 포위당한 왕국이었다. 1575년 세워진 포르투갈 식민지 루안다는 이 지역을 노예 사냥터로 바꿔놓았고, 브라질 사탕수수 농장의 끝없는 수요를 채우고 있었다. 전임 왕이었던 그녀의 오빠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어떤 이들은 포르투갈 밀정이 건넨 독약 때문이라 속삭였고, 그가 너무 협조적이었기 때문이라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응징가 본인이 그랬다고 했다. 오빠가 충분히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응징가를 비범하게 만든 것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신이었다. 정규전이 실패하자, 그녀는 게릴라 전술의 대가가 되었다. 자신의 귀족들이 배신하자, 그녀는 임방갈라와 손을 잡았다—포르투갈인들 스스로가 용병으로 부리던 무시무시한 전사 집단이었다. 그녀는 적의 무기를 빼앗아 적에게 겨눴다.

함대를 불태운 것은 전형적인 응징가의 방식이었다: 내일의 생존을 위해 오늘의 이점을 희생하는 것. 배가 없으면 포르투갈인들은 그녀의 군대를 쫓아 내륙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강을 쉽게 이용할 수 없으면, 그들의 노예 습격은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라 비용이 많이 드는 원정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1622년 포르투갈 총독 주앙 코헤이아 지 소우자와의 유명한 회담에서 교훈을 얻은 바 있었다. 그녀를 위한 의자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을 때—이것은 의도적인 모욕이었다—그녀는 시종에게 무릎을 꿇게 한 뒤 그 등에 앉아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에 임했다.

💡 응징가는 남성 병사들과 똑같이 훈련받은 60명의 여성 전사로 구성된 친위대를 두었으며, 이들은 모든 전투에서 그녀와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