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한 아파트에서, 미국인 첩보 책임자가 힘러의 곁에 섰던 남자와 악수를 나눴다 — 그리고 둘은 함께 전쟁을 끝내게 된다.

비밀 항복: 나치 독일이 이탈리아에서 무너진 날

선라이즈 작전과 잔혹한 전쟁을 끝낸 비밀 협상

1945년 4월 28일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 나치의 비밀 항복은 연합국의 단결을 거의 산산조각 낼 뻔했고, 냉전의 서막을 예고했다.

문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하인리히 폰 피팅호프 장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1945년 4월 28일, 이탈리아 카세르타 왕궁에서 이탈리아 주둔 독일군 총사령관은 약 100만 명에 달하는 추축국 병력의 무조건 항복을 승인했다 — 제3제국의 완전한 붕괴가 있기 불과 6일 전이었다.

이야기는 두 달 전, 취리히의 한 아파트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스위스 주재 OSS 책임자 앨런 덜레스는 SS 장군 카를 볼프와 마주 앉아 있었다. 볼프는 평범한 나치가 아니었다 — 그는 힘러의 비서실장이었으며, 홀로코스트의 가장 어두운 순간들 중 일부에 함께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이탈리아의 항복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 대가로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면책? 역사의 더 관대한 심판? 그의 동기는 오늘날까지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연합국이 '선라이즈 작전'이라 암호명 붙인 이 비밀 협상은 대동맹을 거의 분열시킬 뻔했다. 스탈린이 비밀 회담 소식을 접했을 때, 그는 편집증적인 분노를 폭발시키며 루스벨트가 독일 사단을 동부전선에서 빼내기 위해 단독 강화를 협상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임종을 앞둔 대통령의 격렬한 부인 — 그의 마지막 외교적 행위 중 하나였다 — 은 소련의 의심을 간신히 억눌렀지만, 그 의심은 곧 냉전으로 응고되어갔다.

북부 이탈리아의 올리브 숲과 중세 언덕 마을들에서, 지연의 대가는 시체로 치러졌다. 협상이 하루하루 지연될 때마다 파르티잔들이 처형당했고, 연합군 병사들이 교전 중에 쓰러졌으며, 이탈리아 민간인들은 굶주렸다. 항복 조건이 최종 확정되었을 때도 미 제10산악사단은 여전히 포 계곡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 앨런 덜레스는 협상의 일부를 독일 영사를 통해 진행했는데, 이 영사는 스위스 국경을 넘어 밀반입된 치약 튜브 안에 숨긴 투명 잉크 편지로 소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