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스강에는 아직 4월의 냉기가 남아 있었다. 헨리 허드슨이 아내에게 작별 키스를 했을 때,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반역자의 도박: 망각 속으로 항해한 헨리 허드슨

1607년 5월 1일, 한 집념의 탐험가가 배신과 미스터리로 끝날 항해를 시작했다

1607년 5월 1일, 헨리 허드슨은 첫 번째 북극 항해를 시작했다 — 이는 반란과 미스터리로 끝날 집념의 시작이었다.

1607년 5월 1일, 옅은 봄 하늘 아래 템스강 하구가 반짝이고 있었다. 작은 범선 호프웰호가 정박지를 떠날 때, 뱃머리에는 헨리 허드슨이 서 있었다. 거친 손과 불타는 야망을 가진 중년의 뱃사람이었다. 그는 런던의 첨탑들이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곁에는 겨우 열두 살 된 어린 아들 존이 서서, 이미 바람과 돛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이 날이 둘 모두를 집어삼킬 집념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머스코비 회사는 허드슨에게 대담한 임무를 맡겼다: 북극점을 직접 통과하여 아시아로 가는 북동 항로를 찾으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지리학 이론은 영원한 여름 햇빛에 잠긴 극지 바다에는 얼음이 없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캐세이의 향신료 시장으로 가는 매혹적인 지름길이 될 수 있었다. 허드슨은 이를 종교적 신념처럼 믿었다.

호프웰호는 단 열두 명의 영혼을 태우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다. 그들의 식량은 빈약했다: 소금에 절인 쇠고기, 딱딱한 건빵, 몇 주 안에 상해버릴 맥주. 노르웨이를 지나 북쪽으로 항해하면서, 선원들은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 해가 지지 않고 황금빛 나침반처럼 수평선 위를 맴돌았다. 6월이 되자 그들은 스피츠베르겐에 도착했고, 허드슨은 놀라운 광경을 기록했다 — 바다를 검게 물들일 정도로 수많은 고래 떼가 헤엄치고 있었다. 그의 항해일지에 기록된 이 관찰은 훗날 여러 세대에 걸쳐 유럽 상인들을 부유하게 만든 북극 포경 산업의 불씨가 되었다.

하지만 얼음이 그들을 막아섰다. 청백색의 거대한 빙산들이 침묵 속에 떠다니는 대성당처럼 모든 항로를 가로막았다. 허드슨은 선원들이 반란을 위협할 때까지 밀어붙였고, 마침내 마지못해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실패했다 — 하지만 그 어떤 영국인보다 더 북쪽까지 항해한 사람이 되었다.

💡 허드슨이 스피츠베르겐 인근의 고래 개체 수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관찰은 의도치 않게 상업적 북극 포경 산업을 탄생시켰고, 이후 수세기에 걸쳐 여러 고래 종을 거의 멸종 직전까지 몰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