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수마를 무릎 꿇렸던 사내가 이제는 스스로 베개에서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정복자의 마지막 고해: 코르테스, 영혼을 저당 잡히다

임종의 자리에서, 제국을 무너뜨린 사내는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망령들과 씨름했다

멕시코의 정복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재산이 죄악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지 번민했다.

방 안에는 장뇌 냄새와 죽음의 기운이 감돌았다. 세비야 인근 카스티예하 데 라 쿠에스타의 소박한 저택에서, 예순두 살의 에르난 코르테스는 땀에 흠뻑 젖은 베개에 기댄 채 누워 있었다. 한때 강인했던 그의 체구는 이질과 오랜 세월의 쓰라린 좌절로 앙상하게 쇠락해 있었다. 1547년 5월 3일, 아스텍 제국의 정복자에게 마침내 시간이 다해가고 있었다.

공증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제들이 곁을 맴돌았다. 코르테스가 그들을 부른 것은 단순히 세속의 일을 정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대서양 건너 수많은 정복자들을 괴롭혀온 문제, 바로 노예가 된 영혼들에 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함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코르테스는 유언장의 부속 조항을 구술했다. 그 내용은 28년 전 베라크루스에서 자신의 배를 불태웠던 젊은 대장이 들었다면 경악했을 것이었다. 그는 엔코미엔다 제도—자신을 막대한 부자로 만들어준 원주민 강제 노역 체제—가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표명했다. 그는 아들 마르틴에게 자신의 정복이 예속시킨 원주민들에게 배상해야 할 빚이 있는지 철저히 조사할 것을 명했다. "이 일을 그의 양심에 맡기노라," 코르테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나로서는 내 양심을 온전히 달랠 길이 없기에."

이것은 결코 가벼운 고백이 아니었다. 엔코미엔다는 왕실 칙령의 축복을 받고 식민지 신학자들이 옹호해온, 스페인 식민 지배의 경제적 원동력이었다. 코르테스가 임종의 자리에서 이를 의심한다는 것은 자신의 전 재산이 죄악 위에 세워졌을지도 모른다고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 코르테스의 유해는 사후 최소 여덟 차례나 이장되었다. 멕시코 독립 당시 분노한 군중이 그의 유골을 파괴하려 하자 비밀리에 옮겨진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