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가장 학식 높은 황자가 성스러운 책 한 권을 망토 안에 꿰매 넣은 채 목숨을 걸고 달아나고 있었다.
신화 속으로 사라진 무굴 제국의 황자
제국이 재로 변하기 전, 다라 시코의 마지막 자유의 날
학자 황자 다라 시코는 배신과 죽음을 향해 도주했지만, 그가 남긴 번역서들은 제국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1659년 5월 8일, 다라 시코는 카이버 고개의 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지친 말을 재촉했다. 그의 뒤에서는 세계 최대의 제국이 몬순 빗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앞에는 오직 아프간의 환대에 대한 절박한 희망만이 남아 있었다—그리고 그의 운명을 봉인할 배신자가.
30년간 다라는 타지마할을 지은 샤 자한의 황금 같은 아들이었다. 황태자로 길러진 그는 우파니샤드를 페르시아어로 번역하고, 수피 신비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이며, 힌두교와 이슬람의 지혜가 하나로 융합되어 초월적인 무언가가 되는 제국을 꿈꿨다. 델리에 있는 그의 서재에는 세 대륙의 철학자들이 탐내는 필사본들이 가득했다. 유럽의 여행자들은 그를 아시아에서 가장 학식 높은 황자라 불렀다.
그러나 학식은 기병대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의 동생 아우랑제브—경건하고, 인내심 있으며, 무자비한—는 매 순간 그를 앞질렀다. 전년에 벌어진 사무가르 전투에서 다라의 군대는 산산조각 났다. 이제 겨우 백여 명의 충신만이 남은 상황에서, 한때 수백만을 호령하던 황자는 볼란 고개를 향해 도주하고 있었다. 다라가 한때 사형에서 구해준 적 있는 아프간 족장 말리크 지완에게 피신처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 다라 시코가 페르시아어로 번역한 우파니샤드는 훗날 유럽에 전해져 철학자 쇼펜하우어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책을 '내 삶의 위안'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