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3년 5월 9일 밤, 바젤 대학가에서 촛불이 거의 다 타들어갈 무렵, 가스파르 보앵은 깃펜을 내려놓았다.

가스파르 보앵이 모든 식물에 이름을 붙인 밤

스위스 의사의 촛불 아래 집념이 린네의 토대를 놓다

한 스위스 의사가 40년을 바쳐 최초의 체계적인 식물 명명법을 창안했고, 한 세기 후 린네에게 영감을 주었다.

1623년 5월 9일 밤, 바젤 대학가에서 촛불이 거의 다 타들어갈 무렵, 가스파르 보앵은 깃펜을 내려놓았다. 그의 주위에는 40년간의 집념이 흩어져 있었다—압착된 표본들, 바스러져가는 본초서들, 유럽 전역의 식물학자들이 보내온 서신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인류가 생명 세계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영원히 바꿔놓을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가 놓여 있었다.

*피낙스 테아트리 보타니치(Pinax Theatri Botanici)*가 완성된 것이다.

보앵은 예순셋이었고, 수십 년간 부족한 불빛 아래서 식물 표본을 들여다본 탓에 눈은 약해져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수천 점의 말린 꽃과 뿌리, 잎을 다루느라 영구적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밤, 그는 그 어떤 인간도 해내지 못한 일을 완수했다. 그는 약 6,000종의 식물을 체계적으로 목록화하고, 각각에 속명과 종명, 단 두 단어로 이루어진 표준화된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그가 물려받은 것은 가히 혼돈이었다. 보앵 이전에는 하나의 식물이 유럽 전역에서 열두 개가 넘는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다. 흔한 데이지꽃조차 열일곱 가지 별개의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들은 이탈리아 동료가 말하는 "헤르바 스텔라"가 독일 동료의 "슈테른크라우트"와 같은 식물인지도 모른 채 처방을 내렸다. 이런 혼란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 보앵의 체계는 시대를 너무나 앞서 있어서, 그는 식물 과(科)를 자연적 분류군으로 인식하기까지 했다—이러한 분류군이 존재하는 이유를 다윈의 진화론이 설명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통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