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순 비가 정글을 초록빛 지옥으로 바꿔놓았고, 야전병원 막사의 병사들은 병든 자들을 데리러 오는 경비병들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콰이강 학살: 일본군이 병든 포로들을 처형했을 때

죽음의 철도 위에서 잊혀진 만행

1943년 5월 19일, 일본군 경비병들은 죽음의 철도 수용소에서 병든 연합군 포로들을 조직적으로 처형했다—이 학살은 이후 정글과 침묵 속에 묻혀버렸다.

몬순 비가 정글을 초록빛 지옥으로 바꿔놓았고, 손쿠라이 제1수용소 야전병원 막사의 병사들은 대나무 벽 너머로 콰이강이 포효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1943년 5월 19일, 일본의 버마-태국 철도를 건설하던 연합군 포로들에게 생존 그 자체가 저항의 행위가 되어버린 때였다.

그날 아침, 일본군 경비병들이 임시 병원에 들이닥쳤다—벽도 없이 아탑 야자잎으로 지붕만 엮은 허름한 막사에. 그들은 포로들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기준은 섬뜩할 정도로 단순했다: 일할 수 없을 정도로 병든 자. 무아르 전투에서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은 호주군 장교 찰스 앤더슨 중령은 경비병들이 콜레라와 이질 환자들을 대나무 침상에서 끌어내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어떤 이들은 걸을 수조차 없었다. 그들은 들것에 실려 나갔다.

그 후 벌어진 일은 수십 년간 철저히 은폐되었다. 선별된 포로들—추정치로 30명에서 50명 사이, 대부분 호주인과 영국인—은 정글 깊숙이 끌려갔다. 일본군의 공식 해명은 훗날 그들이 더 나은 시설로 이송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 시설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415킬로미터에 걸쳐 불가능한 지형을 관통하는 죽음의 철도는 침목 하나당 대략 한 명의 목숨을 요구했다. 그러나 손쿠라이는 그보다 더 어두운 무언가를 상징했다: 과로나 질병에 의한 죽음이 아닌, 더 이상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는 자들에 대한 계획된 살인. 일본인 기술자 후타마츠는 훗날 수용소 지휘관들이 방콕 본부로부터 불가능한 할당량을 부여받았으며, 병든 포로들은 일하는 자들의 몫인 배급을 축내는 존재로 여겨졌다고 증언했다.

💡 1957년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수년간 일본에서 상영 금지되었지만, 생존자들은 정반대의 이유로 이 영화를 비판했다: 포로 생활을 너무 품위 있고 질서정연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