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은 병사들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모래가 아니라 병사들이었다. 수천 명이 파도 속으로 줄지어 서서,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를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시작: 영국군이 전멸 위기에 처했을 때
다이나모 작전과 338,000명을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도박
1940년 5월 26일, 영국은 다이나모 작전을 개시했다—덩케르크에 고립된 338,000명의 병사를 구출한 필사적인 철수 작전이었다.
해변은 병사들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모래 자체는—창백하고 평평하게 펼쳐져, 불가능할 만큼 넓어 보이는 잿빛 해협을 향해 뻗어 있었지만—검은 것은 병사들이었다. 수천, 수만 명이 모래언덕에서 차가운 파도 속까지 구불구불 뱀처럼 이어진 긴 줄을 서서,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를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1940년 5월 26일 오후 6시 57분, 버트램 램지(Bertram Ramsay) 해군 중장은 도버 성 지하 터널에서 다이나모 작전 개시 신호를 보냈다. 영국 원정군은 프랑스군, 벨기에군과 함께 독일 국방군의 전격전에 밀려 덩케르크 항구 주변의 점점 좁아지는 포위망 안에 갇혀 있었다. 히틀러의 기갑부대는 불과 16킬로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군 참모들은 내심 45,000명 정도를 구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운이 좋다면.
그러나 이어진 일은 모든 예상을 뒤엎었다.
가장 먼저 해협을 건넌 것은 구축함과 수송선, 즉 이미 기뢰로 가득한 해역을 헤쳐나가는 정규 해군 함정들이었다. 그러나 램지는 전례 없는 호소를 했다: 민간 선박이 필요하다고. 램스게이트(Ramsgate)의 어선들. 템스 강 여객선들. 구명정들. '도린(Doreen)'이나 '뉴 브리태닉(New Britannic)' 같은 이름이 붙은 유람 요트들. 그 배들의 주인들—어부들, 주말 항해가들, 페리 선장들—은 자신들이 지옥의 소용돌이 속으로 항해하게 될 줄도 모른 채 응답했다.
💡 덩케르크에서 7,000명 이상의 병사를 구출한 외륜선 메드웨이 퀸호는 전쟁이 시작되기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들을 태우고 당일치기 여행을 다니던 유람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