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6월 3일, 알래스카의 안개를 뚫고 떨어진 폭탄들은 단순한 양동작전이 될 예정이었다—그러나 그것은 미국에게 전쟁의 가장 값진 선물을 안겨주었다.
미드웨이 해전의 잊혀진 서막: 더치 하버 공습
잊혀진 알류샨 전역, 일본 폭탄이 미국 영토에 떨어진 그날
일본의 알래스카 양동 공습은 의도치 않게 온전한 상태의 제로 전투기를 미국에 선사했고, 이것이 태평양 공중전의 판도를 바꾸었다.
1942년 6월 3일 아침, 운알래스카 섬 위로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 안개도 구름 사이를 뚫고 급강하하는 나카지마 B5N 뇌격기들의 굉음을 막지는 못했다. 하사관 샘 무어(Sam Moore)가 포트 미어스 인근에서 탄약을 나르고 있을 때, 첫 번째 폭탄이 작렬했다. 흙과 잔해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진주만 공습 이후 처음으로, 일본 항공기가 미국 본토를 공격한 순간이었다.
더치 하버 공습은 무작위 공격이 아니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이를 그의 원대한 미드웨이 작전의 일환으로 구상했다—미국 항공모함들을 북쪽으로 유인하는 양동작전으로, 그 사이 주력 함대가 중부 태평양을 타격한다는 계획이었다. 경항공모함 류조와 준요는 불가능에 가까운 악천후 속에서 항공기들을 발진시켰고, 조종사들은 잿빛 안개 벽 속에서 추측 항법에 의존해 비행해야 했다.
일본군이 몰랐던 것이 있었다. 미국 암호 해독반이 이미 그들의 계획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스테이션 하이포의 조지프 로체포트(Joseph Rochefort) 소령 팀은 충분한 양의 통신을 가로채 해독했고, 알류샨 양동작전과 진짜 목표인 미드웨이 양쪽 모두를 파악해냈다. 그러나 더치 하버 수비대에는 단편적인 경고만이 전달되었을 뿐이었다.
공격은 6월 3일과 4일 양일에 걸쳐 두 차례 감행되었다. 일본 제로기들이 무선 기지와 연료 탱크를 기총 소사하는 동안, 급강하 폭격기들은 막사와 병원선을 노렸다. 이 공습으로 25명의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는 불타는 연료 저장소로 달려가 부상병들을 구하려던 요리병 팩스턴 데이비스(Paxton Davis) 이등병도 있었다.
💡 노획된 아쿠탄 제로기는 너무나 귀중한 자산이어서, 미국 시험 비행사들이 이 기체를 모든 종류의 미군 전투기와 모의 공중전에 투입했다. 이를 통해 개발된 '대치 위브(Thach Weave)' 회피 기동술은 수많은 조종사들의 생명을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