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동안 미군 폭격기들은 안개와 버려진 개들만이 지키고 있던 섬의 요새를 맹폭했다.

유령 함대: 연합군 폭격기가 텅 빈 키스카 섬을 초토화한 날

무혈 침공 '코티지 작전'에서 숨진 300명의 병사들

연합군은 수 주간 키스카 섬을 폭격하고 상륙했지만, 일본군이 이미 비밀리에 철수한 뒤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313명의 병사가 여전히 목숨을 잃었다.

1943년 6월 3일, 짙은 안개가 알류샨 해역을 뒤덮은 가운데, 미군과 캐나다군은 정보부가 예고한 처절한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베링해 끝자락에 솟아 있는 얼어붙은 화산섬 키스카는 정확히 1년 전부터 일본군 점령지였다. 항공 정찰 사진에는 요새화된 진지, 포대, 그리고 동토에 깊이 파고든 약 10,000명 규모의 적 수비대가 포착되어 있었다.

수 주 동안, 알류샨 전역 사상 가장 집중적인 폭격이 이 섬을 강타했다. 해군 함정들은 안개 속으로 포탄을 쏟아부었다.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들은 끊임없이 드리운 구름 사이로 폭탄을 투하했다. 일본군은 그저 맹공을 견디며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안개와 포화의 장막 아래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7월 21일부터 28일 사이, 미군 정찰을 무력화시킨 바로 그 악천후를 이용해 일본 제국 해군은 '케고 작전(Operation Ke-Go)'을 감행했다. 구축함과 순양함을 동원해 5,183명의 일본군 전원을 빠져나가게 한 신들린 듯한 철수작전이었다. 그들은 유령처럼 사라지고, 부비트랩과 개들, 그리고 정교하게 배치된 위장물만을 남겼다.

8월 15일, 34,426명의 연합군—미군과 캐나다군—이 해안에 상륙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적막뿐이었다. 텐트는 비어 있었다. 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적은 3주 전에 이미 사라진 뒤였다.

💡 키스카 침공 당시, 연합군은 일본군이 남기고 간 개 여러 마리를 노획했다. 그중 한 마리는 수 주간의 함포 사격에도 살아남아, 미군 병사들이 '익스플로전(Explosion, 폭발)'이라는 이름을 붙여 입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