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6월 4일 오전 9시 20분, 존 월드론 소령은 자신이 부하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후한 TBD 데버스테이터 기체를 일본 함대를 향해 선회시켰다.

미드웨이에서의 마지막 비행: 뇌격기 제8편대가 전멸한 날

15대의 항공기, 30명의 대원, 단 한 명의 생존자 —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바꾼 희생

뇌격기 제8편대는 일본 함대를 공격하다 단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전사했지만, 그들의 희생은 미드웨이 해전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

1942년 6월 4일 오전 9시 20분, 존 월드론 소령은 자신이 부하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후한 TBD 데버스테이터 기체를 일본 함대를 향해 선회시켰다.

뇌격기 제8편대는 항공모함 USS 호넷에서 15대의 항공기로 출격했다. 각 기체에는 마크 13 어뢰 한 발이 장착되어 있었는데, 이 무기는 신뢰성이 너무 떨어져 승무원들 사이에서 '날아다니는 관 제조기'라 불렸다. 편대에는 전투기 호위가 전혀 없었다. 그들의 데버스테이터는 겨우 115노트가 최고 속도로, 현대의 고속도로 제한속도보다도 느렸다. 그들은 일본이 그때까지 편성한 것 중 가장 강력한 함대의 아가리 속으로 날아들어가고 있었다.

사우스다코다 출신에 수족 원주민 혈통을 가진 비행사 월드론은 전날 밤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마지막 돌격에 남은 비행기가 단 한 대뿐이라도, 나는 그 사람이 끝까지 들어가서 명중시키길 바란다.' 그는 전날 저녁 내내 해도를 연구하며, 지정된 수색 좌표가 아닌 자신의 직감과 항해술로 일본 항공모함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확신은 옳았다.

편대가 해면을 향해 강하하자, 제로 전투기들이 은빛 말벌 떼처럼 그들에게 덮쳐들었다. 데버스테이터들은 하나씩 불길에 휩싸였다. 편대 최후미에서 비행하던 조지 게이 소위는 동료들이 태평양 바다 위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추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후방 사수 로버트 헌팅턴은 이미 기관총에 매달린 채 전사해 있었다. 게이의 팔에도 총알이 관통해 있었다.

💡 존 월드론 소령의 항법 직감은 너무나 놀라워서, 그는 지정된 수색 좌표를 일부러 무시하고도 일본 함대를 찾아냈다. 이로써 그는 적을 '냄새로 맡을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