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펠몬데 요새에서 마흔세 명의 이단 혐의자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그들 중 단 한 사람만이 인류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게 될 것이었다.
지도 제작자의 처형: 메르카토르가 화형을 피한 날
한 플랑드르 지도 제작자가 종교재판의 사형 명단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세계 지도를 발명한 지도 제작자는 한때 종교재판소의 처형을 기다리며 7개월을 보냈다.
1544년 2월 어느 새벽, 경비병들이 헤라르두스 메르카토르를 잡으러 왔다. 그러나 그의 운명이 결정된 것은 6월 5일, 뤼펠몬데 요새에서였다. 루터교 이단 혐의로 기소된 마흔세 명의 죄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일부는 이미 화형당했고, 다른 이들은 참수되었으며, 두 명의 여인은 성 안뜰에 산 채로 매장되었다. 황제 카를 5세를 위해 직접 지구의를 제작했던 천재 지도 제작자 메르카토르는 쇠사슬에 묶인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대한 혐의는 거의 터무니없어 보였다: 메헬렌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에게 보낸 의심스러운 편지들, 알려진 개신교 동조자와의 서신 왕래. 그러나 1544년 스페인령 네덜란드에서 터무니없음은 종교재판의 철저함 앞에서 아무런 방어가 되지 못했다. 검찰관은 공식 판결만 남겨둔 채 이미 그를 루터교도로 단죄한 상태였다.
메르카토르를 구한 것은 신의 개입이 아니라 세속의 인맥이었다. 그가 수학하고 가르쳤던 루뱅 대학교가 그를 위해 움직였다. 뤼펠몬데 시 행정관들에게 긴급 청원서가 전달되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그의 정교한 지도를 의뢰했던 상인 학자들—금과 영향력을 가진 자들—이 권력자들의 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메르카토르의 천구의와 지구의는 주교들과 왕자들의 서재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것을 만든 사람을 불태운다는 것은 가톨릭의 위신을 드높이는 도구를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7개월 동안 메르카토르는 요새에서 신음하며, 그의 옹호자들이 협상하는 동안 기다려야 했다. 다른 죄수들은 잔인할 정도로 신속하게 처리되었다—처형인의 칼날이 떨어지고, 불길이 치솟고, 무덤이 채워졌다. 그러나 지도 제작자만은 손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죽음과 구원 사이에 매달린 채로.
💡 메르카토르가 수감되어 있는 동안, 그의 아내 바르베는 빈궁에 빠져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의 기구들과 지구의를 팔 수 있도록 당국에 허가를 청원해야 했다—오늘날이라면 수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을 물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