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고의 천문학자가 로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그를 죽인 것이 별인지 적들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새벽에 죽은 천문학자: 레기오몬타누스와 독이 든 별

유럽 최고의 수학자가 로마에서 영원히 침묵했을 때

유럽 최고의 천문학자가 달력을 개혁하려던 중 로마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 라이벌의 아들들에게 독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1476년 6월 6일, 로마의 종들이 저녁 기도 시간을 알렸지만, 유럽 전역에서 레기오몬타누스로 알려진 요하네스 뮐러 폰 쾨니히스베르크는 다시는 그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마흔 살의 독일인 천문학자는 바티칸 인근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 누워 있었고, 그의 위대한 작업은 미완으로 남았으며, 뉘른베르크의 천문대는 버려졌고, 독살에 대한 소문이 이미 교황청 전체에 퍼지고 있었다.

교황 식스투스 4세가 불과 몇 달 전 레기오몬타누스를 로마로 소환한 것은 단 하나의 목적 때문이었다: 하늘과 열흘이나 어긋나버린 율리우스력을 개혁하는 것. 천문학자는 정밀한 관측 기록, 로그 계산표, 그리고 이미 항해술을 혁명적으로 바꾼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대담한 자신감을 품고 도착했다. 2년 전 출판된 그의 *천체력(Ephemerides)*은 훗날 콜럼버스를 대서양 너머로 인도하게 될 것이었고—수십 년 후 자메이카에서 그 월식 예측이 탐험가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러나 로마는 뉘른베르크가 아니었다. 영원의 도시는 음모로 들끓었고, 레기오몬타누스는 위험한 적들을 만들어 두고 있었다. 그가 트레비존드의 게오르기오스가 번역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 대해 신랄한 비평을 가하면서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명을 공개적으로 망신시켰던 것이다. 야심 차고 복수심에 불타는 트레비존드의 아들들은 바티칸 내부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천문학자가 갑자기 병에 쓰러졌을 때, 당대인들은 즉시 암살을 의심했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흑사병에 부합하는 증상을 발견했다—그해 여름 로마에는 전염병이 돌고 있었다—그러나 그 시점은 너무나 절묘했다. 레기오몬타누스는 트레비존드의 천문학적 오류들을 철저히 파헤친 비평서를 막 완성한 참이었고, 자신이 뉘른베르크에서 개척을 도왔던 새로운 인쇄 기술로 출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원고는 그의 죽음 이후 사라져버렸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레기오몬타누스가 생전에 출판한 월식 계산표는 1504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콜럼버스는 이 계산표로 월식을 예측하여 적대적이던 자메이카 원주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함으로써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