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테냥드크람니 인근의 밀밭은 8월의 열기 속에서 황금빛으로 고요히 서 있었다. 마치 시속 40킬로미터로 그 사이를 누비며 다가오는 죽음을 알지 못하는 듯, 밀이삭들은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미하엘 비트만의 최후: 빌레르보카주에서 불타버린 티거 전차들
나치 독일 최고의 전차 에이스, 노르망디 옥수수밭에서 최후를 맞다
나치 독일 최고의 전차 에이스가 노르망디에서 전사했고, 그의 시신은 39년간 프랑스 옥수수밭에 묻혀 있었다.
생테냥드크람니 인근의 밀밭은 8월의 열기 속에서 황금빛으로 고요히 서 있었다. 마치 시속 40킬로미터로 그 사이를 누비며 다가오는 죽음을 알지 못하는 듯, 밀이삭들은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티거 007호 전차 안에서 SS 대위 미하엘 비트만은 지휘관 큐폴라를 통해 지평선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7대의 티거 전차 종대를 이끌고 '토탈라이즈 작전'의 폭풍 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1944년 8월 8일, 제2차 세계대전 최강의 전차 지휘관에게 남은 시간은 아마도 20분 남짓이었다.
비트만은 두 달 전 빌레르보카주에서 전설이 되었다. 그곳에서 그의 단 한 대의 티거 전차는 15분이라는 공포의 시간 동안 영국군 기갑 종대를 전멸시켰다—십수 대의 전차와 장갑차량을 격파한 이 전투를, 군사학자들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단독 전차전 중 하나로 기록했다. 괴벨스의 선전 기구는 그를 무적의 상징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상징이란 언제나 좋은 표적이 되기 마련이다.
캉에서 남쪽으로 진격하던 캐나다군과 폴란드군은 경고를 받은 상태였다: 비트만의 부대가 이 구역에 있다고. 전장 상공에서는 영국 공군 정찰기들이 독일군 기갑 부대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었다. 지상에서는 셔먼 파이어플라이—17파운드 주포로 티거의 장갑을 확실히 관통할 수 있는 유일한 연합군 전차—들이 매복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 다음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역사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중이다. 오후 12시 47분경, 비트만의 종대는 고므닐 마을 인근 개활지에서 포착되었다. 치명타를 가한 것이 노샘프턴셔 요먼리 연대의 셔먼 전차 소대였는지, 셔브룩 퓨질리어 연대의 캐나다 전차였는지, 아니면 로켓을 장착한 타이푼 전투기였는지는 수십 년간 논쟁의 불씨가 되어왔다. 확실한 것은 티거 007호가 대폭발을 일으켰다는 것이다—내부 탄약이 유폭하면서 포탑이 차체에서 완전히 분리될 정도로 격렬한 폭발이었다.
💡 비트만의 유해는 1983년 건설 노동자들이 우연히 그의 티거 전차 잔해를 발굴하면서 비로소 신원이 확인되었다—전사 6개월 전에 새겨진 그의 결혼반지가 신원 확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