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영국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가 될 그 소년은, 두 살 이후로 단 한 음표도 본 적이 없었다.
맹인 작곡가의 마지막 교향곡: 존 스탠리, 오르간 앞에 서다
두 살에 시력을 잃은 한 남자가 어떻게 영국 최고의 음악가가 되었는가
두 살 때 실명한 존 스탠리는 오직 청각적 천재성만으로 영국 궁정 최고위 음악가의 자리에 올랐다.
왕실 예배당의 촛불이 일렁이는 가운데, 회중은 숨을 죽였다. 1779년 6월 21일, 두 살 때 가정 내 사고로 실명한 존 스탠리가 오르간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그 불가사의한 정확성은 지난 50년간 런던을 경탄케 해온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악보를 볼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악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손끝에서는 너무나 정교하고, 수학적으로 완벽한 오르간 자유곡이 흘러나왔다. 한때 젊은 모차르트조차 이 사람의 연주를 들으며 말을 잃고 앉아 있었을 정도였다.
스탠리의 이야기는 그 시대의 모든 통념을 뒤엎었다. 1712년 런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도자기 그릇을 들고 가다 넘어지며 대리석 벽난로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 후 찾아온 열병이 그의 시력을 영원히 앗아갔다. 그러나 부모는 그를 자선 시설에 맡기는 대신, 비범한 무언가를 알아보았다. 이 아이는 어떤 선율이든 단 한 번만 들으면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열한 살에 그는 올 할로우즈 브레드 스트리트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임명되었다—런던 역사상 최연소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다. 스무 살에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음악 학사 학위를 받았는데, 시험 작곡 과제를 필기사에게 음표 하나하나 구술로 불러주었고, 그 필기사는 그의 속도를 따라가기에 벅찼다.
💡 스탠리는 오라토리오 전곡을 정교한 상상 속 건물의 방들로 기억했다—이는 현대의 기억의 궁전 기법보다 수 세기나 앞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