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작업실에서 촛불이 흔들리는 가운데, 요스트 뷔르기는 자신의 걸작을 기름천으로 감쌌다—바깥에서 들려오는 먼 천둥소리는 폭풍이 아니었다. 그가 평생 일궈온 모든 것을 파괴하러 오는 가톨릭 기병대의 발굽 소리였다.

종교재판을 피해 달아난 시계공: 요스트 뷔르기의 한밤중 탈출

스위스의 천재가 신앙의 군대를 피해 평생의 역작을 몰래 빼돌린 이야기

70세의 시계공이 프라하 함락 직전, 혁명적인 수학적 발견들을 종교재판 요원들의 눈을 피해 몰래 빼돌렸다.

프라하의 작업실에서 촛불이 흔들리는 가운데, 요스트 뷔르기는 자신의 걸작을 기름천으로 감쌌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먼 천둥소리는 폭풍이 아니었다—보헤미아 들판을 가로질러 후퇴하는 개신교 기병대의 소리였다. 1622년 6월 23일, 페르디난트 2세의 가톨릭 군대가 주먹을 쥐듯 도시를 조여오고 있었다.

뷔르기는 일흔 살이었다. 30년간 그는 두 명의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모시며 황실 시계공으로 일했고, 천문학자들이 눈물을 흘릴 만큼 정밀한 기구들을 제작했다. 그의 천구의는 천 개가 넘는 별들을 전례 없는 정확도로 표시했다. 그의 기계 장치들은 요하네스 케플러가 행성 운동 법칙을 계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프라하는 곧 함락될 터였고, 개신교 궁정과 연관된 자는 누구든 심문을—혹은 그보다 더한 것을—피할 수 없었다.

늙은 스위스 장인은 놀라운 긴박함으로 움직였다. 그는 프라하 창문 투척 사건을 겪어냈고, '겨울왕' 프리드리히 5세의 짧은 치세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동료들이 종교재판소로 끌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의 작업실에는 시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네이피어와는 독립적으로 계산한 로그표, 수십 년에 걸친 천문 관측 기록, 그리고 이후 한 세기가 지나서야 재현될 기계식 계산기의 시제품이 있었다.

그날 밤 뷔르기가 한 일은 여전히 부분적으로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이후 카셀 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서신에 따르면, 그는 가장 민감한 수학 원고들을 동쪽으로 도주하는 개신교 상인들의 네트워크에 맡겼다. 소수점 여덟 자리까지 계산된 그의 유명한 '진행표(Progress Tabulen)'는 스위스로 향하는 이중 바닥 상자 속에 숨겼다.

💡 뷔르기는 존 네이피어가 로그표를 출판하기 6년 전에 독자적으로 로그를 발명했지만, 개신교 신앙과 프라하 탈출로 인해 생전에는 결코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