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커스 폭격기들이 지중해의 태양을 가르며 비명을 지르듯 급강하했고, 뉴질랜드의 자랑스러운 배는 숨을 곳이 없었다.
아와테아호의 침몰: 뉴질랜드의 호화 여객선이 알제리 앞바다에서 최후를 맞이한 날
토치 작전의 피비린내 나는 여파 속 한 병력수송선의 마지막 시간들
뉴질랜드에서 가장 우아한 여객선이 3년간의 전쟁을 버텨냈으나, 알제리 앞바다에서 루프트바페의 공습에 최후를 맞이했다.
1943년 7월 9일 아침, 지중해의 태양은 기만적일 만큼 평온했다. 그때 MV 아와테아호의 감시원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검은 형체들을 발견했다. 3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가장 우아한 원양 여객선이었던 이 배는 샴페인 리셉션 대신 빽빽이 들어찬 병력 침상으로 가득 찬 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를 건너 수천 명의 연합군 병사들을 수송해 왔다. 이제 부지(Bougie) 인근 알제리 해안에 정박한 이 배의 행운은 마침내 바닥나고 말았다.
융커스 Ju 88 폭격기들은 낮게, 그리고 빠르게 들이닥쳤다. 연합군 함선들이 놀이공원의 과녁처럼 떠 있는 항구 위로 엔진 소리가 굉음을 내질렀다. 아와테아호는 싱가포르로 향하는 호송 항해, 그리스에서의 철수, 토브룩의 혼란을 모두 견뎌냈다. 뉴질랜드 상선 선원들과 영국 포수들로 구성된 승무원들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는 포탄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폭탄이 정확히 명중했다.
첫 번째 폭발이 기관실을 관통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기관장 윌리엄 크로퍼드(William Crawford)는 그의 부하 선원들과 함께 즉사했다. 불길은 무서운 속도로 하부 갑판을 집어삼켰고, 연료 저장고와 한때 일등석 승객들을 호화로운 만찬으로 맞이했던 목재 장식들이 화염의 먹이가 되었다.
윌리엄 마틴(William Martin) 선장은 배를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혼란 속에서도 규율은 지켜졌다. 생존자들은 훗날 탄약이 열기에 유폭되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아와테아호 승무원들이 체계적으로 구명보트를 내리고 부상자들이 뱃전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왔다고 회상했다. 한때 뉴질랜드의 상류층을 시드니와 밴쿠버로 실어 날랐던 배가 이제 수 마일 밖에서도 보이는 장작더미처럼 타올랐다.
💡 아와테아호가 침몰했을 때, 병원선으로 개조되기까지 불과 몇 주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전쟁 전의 우아한 선실들은 시칠리아 부상병들을 위한 병동이 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