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설의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온 대로 죽음을 맞이했다—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들로부터 도망치면서.
귀 먼 작곡가의 마지막 인사: 은신 중에 숨을 거둔 대니얼 디포
영국 소설의 아버지는 채권자들을 피해 도망치며 마지막 날들을 보냈다
영국 소설을 창시한 작가는 채권자들을 피해 런던의 한 하숙집에 숨어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1731년 여름의 열기가 런던 크리플게이트 교구의 로프메이커스 앨리 위로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한때 그를 찬양하던 문학 살롱들과는 거리가 먼, 비좁은 하숙집 안에서 대니얼 디포는 7월 31일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그의 나이 칠십 세, 홀로, 그리고 빚 때문에 그를 감옥에 가두려는 자들을 피해 숨어 있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소설 중 하나에 완벽한 소재가 되었을 법한 결말이었다.
『로빈슨 크루소』, 『몰 플랜더스』, 『전염병 연대기』—우리가 오늘날 사실주의 소설이라 부르는 장르를 창시한 작품들—를 영문학에 선사한 이 사람은, 그의 사위가 '완전한 고독의 상태'라고 묘사한 환경에서 마지막 몇 달을 보냈다. 그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채권자들을 피해 1730년 어느 때인가 스토크 뉴잉턴의 안락한 집을 떠나, 오십 년을 함께한 아내까지 뒤에 남겨두고 도망쳤다.
디포의 삶은 끊임없는 변신의 연속이었다. 1660년경 대니얼 포로 태어난 그는 귀족적인 '드'를 스스로 덧붙였는데, 이는 그의 수많은 허구 중 작은 것에 불과했다. 그는 양말 상인, 기와 제조업자, 정치 팸플릿 작가, 정부 스파이, 그리고 파산자이기도 했다—그것도 두 번이나. 그는 선동적 명예훼손죄로 조리돌림대에 섰고, 그의 귀가 나무에 못 박힐 뻔했으나, 동정하는 런던 군중들이 던진 꽃세례를 받았다.
💡 1703년 디포가 풍자적 팸플릿을 썼다는 이유로 조리돌림대에 섰을 때, 런던 군중들은 썩은 채소 대신 꽃을 던졌고, 행상인들은 그 아래에서 그의 시 '조리돌림대에 바치는 찬가' 사본을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