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최고의 무공훈장을 받은 영국 이등병이 부상당한 독일 병사를 조준경에 담았다—그리고 그가 내린 결정은 20세기의 역사를 뒤바꿔 놓았다.
플로흐스테르트의 총성: 히틀러가 참호에서 죽을 뻔했던 순간
20세기를 바꿔버린 영국 병사의 자비로운 순간
영국 최고의 1차 세계대전 무공훈장 수훈자가 부상당한 아돌프 히틀러의 목숨을 살려주었을지도 모른다—그리고 그는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1918년 8월 18일, 프랑스 마르쿠앙의 포탄 구덩이 위로 아침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제5 웰링턴 공작 연대 소속 헨리 탠디 이등병은 리엔필드 소총에 묻은 진흙을 닦아내며 황폐해진 전장을 바라보았다. 독일군은 후퇴 중이었지만, 곳곳에서 치명적인 저항의 불꽃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탠디는 이미 그날 비범한 용맹을 보여주었다—총검 돌격을 이끌고, 포화 속에서 부상당한 전우들을 등에 업어 나르고, 기관총 세례가 쏟아지는 운하 다리를 건넜다. 하지만 전투의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일이야말로 그의 남은 인생을 평생 괴롭히게 될 것이었다.
영국군이 마을 근처 독일군 전선을 뚫고 진격할 때, 부상당한 독일군 상병 하나가 탠디의 조준선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그 남자는 다리를 절고 있었고, 무장도 하지 않았으며, 군복은 찢어지고 피로 얼룩져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독일 병사는 손을 들려 하지 않았다. 그저 지친 채로 서서, 자신의 전쟁을 끝내줄 총알을 기다리고 있었다.
탠디는 소총을 내렸다. 싸우지 않는 부상병을 쏠 수는 없었다. 독일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희미하게, 거의 알아채기 어려운 감사의 표시였다—그리고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 히틀러는 탠디가 그려진 그 그림의 복제본을 베르크호프 산장에 보관했으며, 1937년 독일 영사관을 통해 원작 화가에게 직접 그림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