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바리케이드는 새벽에 세워졌다. 뒤집어진 전차와 프라하의 유서 깊은 거리에서 뜯어낸 조약돌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프라하 봉기: 체코 시민들이 나치 점령군에 맞서 일어선 순간

한 도시를 거의 잿더미로 만들 뻔한 5일간의 시가전

프라하 시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소련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5일간 독일 국방군과 싸웠다.

1945년 5월 5일 새벽, 첫 번째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뒤집어진 전차와 프라하의 유서 깊은 거리에서 뜯어낸 조약돌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정오가 되자, 도시의 교회 종들이 불협화음을 내며 격렬하게 울려 퍼졌다—무장 저항을 알리는 사전에 약속된 신호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진정으로 불붙는 것은 1968년 8월 20일, 소련 탱크들이 바로 이 거리를 지나며 또 다른 봉기를 짓밟았을 때다. 하지만 1945년 5월의 망령들은 그 조약돌 위를 떠돌았다—프라하가 이전에도 싸웠음을 상기시키며.

그 절박했던 봄으로 되돌아가 보자.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나치의 장악력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독일 국방군은 여전히 4만 명의 병력으로 프라하를 점령하고 있었다. 체코 파르티잔, 공장 노동자,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엽총, 화염병, 노획한 독일군 무기로 무장한—이 그들에 맞서 일어났다. 라디오 방송국은 봉기군의 생명줄이 되었다. "프라하가 부르고 있습니다!" 방송원들은 체코어, 독일어, 러시아어, 영어로 간청했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전투는 중세적일 만큼 밀접하고 처절했다. 저격수들이 바로크 양식의 창문에서 사격했다. 여성들은 유모차에 탄약을 숨겨 날랐다. 십대 소년들은 하수구를 기어 독일군 진지를 우회했다. 동부 전선에서 퇴각하던 SS 부대는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포로로 잡힌 봉기군을 즉결 처형하고 민간인들이 갇힌 건물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종전 직전, 가장 기이한 반전이 일어났다. 러시아 해방군—나치와 함께 싸웠던 반스탈린 러시아인들—이 갑자기 편을 바꾼 것이다. 세르게이 부냐첸코(Sergei Bunyachenko) 장군은 1만 8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프라하로 진격해 독일군과 싸웠다. 이 막판 배신이 진격해 오는 소련군으로부터 사면을 얻어줄 것이라 기대하며.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스탈린에게 넘겨져 처형당했다.

💡 나치를 위해 싸웠던 반스탈린 러시아 병사들이 봉기 중에 편을 바꿨다. 서방의 사면을 얻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대부분은 소련에 넘겨져 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