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란지 해변으로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결과 함께 비명이 밀려왔다.
크란지 해변 학살: 일본군의 총검 앞에서 굴복하지 않은 호주군의 저항
존엄을 포기하기를 거부한 포로들의 잊혀진 싱가포르 학살
1942년 싱가포르 해변에서 일본군에게 학살당하던 호주군 포로들은 '왈칭 마틸다'를 부르며 최후를 맞이했다.
크란지 해변으로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결과 함께 비명이 밀려왔다. 1942년 8월 27일, 찰스 앤더슨(Charles Anderson) 중령 휘하의 병사들—참혹했던 말레이 전역의 생존자들—이 일본군에게 붙잡혀 싱가포르 북부 해안선을 따라 끌려가고 있었다. 이후 벌어진 일은 수십 년간 묻혀 있었으며, 태평양 전쟁의 더 큰 참극들 아래 감춰져 있었다.
포로들은 7개월 전 싱가포르 함락 당시 붙잡혔으며, 히로히토 천황 제국의 '손님'이 된 13만 연합군 병력의 일부였다. 그러나 제2/19대대와 제2/20대대 소속이었던 이 호주군들은 무아르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특별한 원한을 사게 되었다. 그들은 후퇴 전투를 벌이며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이 공적으로 앤더슨은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았다.
습한 공기가 감도는 그날 아침, 약 300명의 호주군과 인도군 포로들이 경비병들이 "작업 임무"라 부르는 곳으로 강제 행군 당하고 있었다. 시체 사이에서 죽은 척하여 살아남은 해럴드 머레이(Harold Murray) 이등병은 훗날 행렬이 아무런 경고 없이 멈추었다고 증언했다. 경비병들은 병사들을 열 명씩 나누기 시작했다.
첫 번째 무리가 모래 언덕 뒤로 끌려갔다.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침묵.
💡 처형당하던 호주군 병사들이 즉흥적으로 부른 '왈칭 마틸다'는 일본군 사형 집행자들을 너무나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그 잠깐의 머뭇거림 덕분에 23명이 인근 맹그로브 숲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