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풍이 열대 꽃향기를 실어 열린 창문으로 들어왔다. 대서양 한가운데 화산섬에서, 잉글랜드의 잊혀진 별지기가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남반구의 별들에 이름을 붙이다 숨진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의 잊혀진 스승, 세인트헬레나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다

세인트헬레나에서 남반구의 별들을 지도에 담던 잊혀진 천문학자가, 핼리가 도착해 그 영광을 차지하기 직전에 세상을 떠났다.

무역풍이 열대 꽃향기를 실어 제임스타운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석조 가옥의 열린 창문으로 들어왔다. 그 안에서 요하네스 헤벨리우스의 옛 라이벌이 죽어가고 있었다. 한때 그에게 별들 사이의 불멸을 약속했던 바로 그 습한 대서양 공기가 이제 그의 폐를 갉아먹고 있었다.

1677년 8월 30일이었다. 훗날 초대 왕립 천문학자가 될 존 플램스티드 목사는 이 죽음을 두고 '하늘 그 자체에 대한 비통한 손실'이라 칭하게 된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중간에 위치한 이 외딴 화산섬에, 에드먼드 핼리의 첫 번째 진정한 실용 천문학 스승의 육신이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잊혀진 에드먼드 건터의 제자이자 별 목록 제작자, 토마스 스트리트의 서신 상대, 지도 제작의 혁명가—조너스 무어 경의 피보호자이자 천문대 건설가 시외르 드 생피에르.

그러나 역사는 그날 세인트헬레나에서 죽은 또 다른 사람을 기억한다. 존 셀러의 동료이자 찰스 2세가 임명한 관측자, 그가 남반구 천구를 지도화하던 작업은 불과 몇 달 뒤 젊은 에드먼드 핼리에 의해 완성되게 된다.

죽어가던 그는 리처드 타운리의 서신 상대이자 영국 천문학자들의 보이지 않는 학회 일원—과학 혁명의 숨은 건축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그가 가르친 빛나는 인물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대부분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 8월 저녁, 열병이 그를 집어삼키는 동안, 그는 조수에게 마지막 관측 결과를 구술했다. 단 하나의 남반구 별도 이름 없이 남겨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 동인도회사 선박들은 향신료와 함께 천문 기기들을 일상적으로 운반했으며, 세인트헬레나는 유럽 천문대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남반구 관측을 이용해 항해 해도를 보정하는 중요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