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시신들이 힌두쿠시 산맥을 따라 5마일에 걸쳐 늘어서 있었다. 제국 최악의 악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죽음의 행렬이었다.

카불에서 떠난 마지막 행렬: 영국의 아프간 군대가 사라진 날

4,500명의 군인과 12,000명의 민간인이 힌두쿠시 산맥으로 걸어 들어갔다.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았다.

영국 역사상 최악의 군사적 참사로 16,500명이 아프간 산악지대로 행군했으나, 단 한 명의 군의관만이 살아남아 그 이야기를 전했다.

병영 성벽에 아침 서리가 내려앉은 그때, 윌리엄 엘핀스턴(William Elphinstone) 소장은 제국의 군대를 파멸로 이끌 명령을 내렸다. 1842년 1월 6일, 16,500명의 영혼들 — 영국군 병사들, 인도인 세포이 용병들, 여성들, 아이들, 그리고 군 수행원들 — 이 카불의 성문을 빠져나와 얼어붙은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이 참사가 무엇을 초래했는지 이해하려면, 1842년 8월 31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날, 윌리엄 놋(William Nott) 소장의 군대가 칸다하르에서 출발해 카불로 진격했다. 영국인 포로들을 해방시키고 산산이 조각난 제국의 자존심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마주한 것은 동포들의 뼈가 떠도는 유령의 도시였다.

1월의 퇴각은 무능함의 결정체였다. 예순 살의 나이에 통풍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던 엘핀스턴은 아프간 부족장들과 철수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행렬은 산악 협로를 따라 5마일에 걸쳐 늘어섰고, 아프간 저격수들은 축제 사격장의 표적을 맞추듯 병사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기온은 영하 30도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제자일(Jezail) 머스킷 총탄이 붉은 군복을 뚫고 들어갔고, 가족들은 눈더미 속에서 얼어 죽어갔다.

사흘째 되는 날, 군율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여단장의 아내였던 플로렌티아 세일(Florentia Sale) 부인은 훗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병사들이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얼어붙어 방아쇠조차 당길 수 없었다.' 아프간 부족민들이 산등성이에서 내려와 시신이 채 식기도 전에 옷가지를 벗겨 갔다. 쿠르드 카불 협곡(Khurd Kabul Pass)은 5마일에 달하는 도살장이 되었다.

💡 브라이든 박사의 유명한 말은 퇴각의 고통을 견디다 잘랄라바드에 도착한 지 며칠 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말은 엘리자베스 버틀러(Elizabeth Butler)가 1879년에 그린 '군대의 잔해(Remnants of an Army)'라는 작품 속에 영원히 남았으며, 이 그림은 오늘날에도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에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