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침, 도쿄만 위로 마치 장례 수의처럼 드리워졌던 안개가 걷히며, 어떤 일본인도 상상조차 못했던 광경이 모습을 드러냈다—258척의 연합군 함대가 그들의 성스러운 바다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미주리호 위의 서명: 일본 제국이 전함 갑판 위에서 최후를 맞이한 날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을 끝낸 30분
일본은 USS 미주리호 선상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그 순간, 1853년 페리 제독이 내걸었던 바로 그 성조기가 역사의 완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아침, 도쿄만 위로 마치 장례 수의처럼 드리워졌던 안개가 걷히며, 어떤 일본인도 상상조차 못했던 광경이 모습을 드러냈다—258척의 연합군 함대가 그들의 성스러운 바다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1945년 9월 2일, USS 미주리호 위에서는 녹색 천으로 덮인 테이블 하나가 20세기 가장 중대한 서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9시 2분,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가 갑판을 절뚝이며 건너왔다. 1932년 한국인 독립운동가의 폭탄 테러로 잃은 의족이 티크 갑판 위에서 딸깍거렸다. 그 뒤로 우메즈 요시지로 대장이 걸었다. 그의 얼굴에는 간신히 억누른 치욕의 빛이 역력했다. 주변에는 11개국 연합국 대표들이 도열해 있었지만, 모든 시선은 한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그는 깃이 열린 카키색 군복 차림으로, 일부러 어떤 훈장도 달지 않았다.
의식은 외과 수술처럼 정밀하게 기획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혼란이 도사리고 있었다. 일본 대표단은 좌석 배치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도착했다. 캐나다군 대령 한 명이 엉뚱한 줄에 서명하는 바람에 문서 전체가 순간적으로 뒤죽박죽이 되기도 했다. 언제나 극적인 연출가였던 맥아더는 펜을 하나가 아닌 다섯 자루나 꺼내 들었고, 그중 두 자루는 바탄과 코레히도르의 지옥을 살아남은 장군들을 위해 남겨두었다.
당시 참관인들 중 거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있었다—맥아더 뒤에 걸린 깃발이었다. 그것은 평범한 성조기가 아니었다. 1853년 매슈 페리 제독이 일본을 서구 무역에 강제로 개항시킬 때 내걸었던 바로 그 서른한 개 별의 성조기였다. 해군은 맥아더의 직접적인 요청에 따라 이 깃발을 애나폴리스에서 공수해 왔다. 역사 자체가 무기가 되고 있었다.
💡 항복 의식 당시 게시된 서른한 개 별의 성조기는 1853년 페리 제독이 일본을 강제 개항시킬 때 내걸었던 바로 그 깃발이었다—맥아더는 이 항복식을 위해 특별히 해군사관학교에서 이 깃발을 공수해 오도록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