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남자가, 자신이 죽음을 명령한 아름다운 청년의 시신 앞에서 기도하러 왔다.
추기경의 마지막 고해: 리슐리외, 자신이 파멸시킨 최대의 적을 묻다
프랑스 최고의 책략가가 자신이 파멸시킨 자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리슐리외 추기경은 자신이 반역죄로 처형을 명령한 아름다운 젊은 궁정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 바로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의 장례식에.
그해 9월의 아침은 파리치고는 추웠다. 1642년 9월 9일, 리슐리외 추기경이 마차에서 내렸을 때, 그의 붉은 예복은 생폴생루이 성당의 잿빛 돌벽을 배경으로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했다. 그는 생크마르 후작을 묻으러 온 것이었다 — 불과 며칠 전, 자신이 참수형을 명령한 바로 그 남자를.
앙리 쿠아피에 드 뤼제, 생크마르 후작은 리옹에서 망나니의 칼날이 그의 목을 찾아왔을 때 스물두 살이었다. 아름답고, 야심만만하며, 치명적으로 순진했던 그는 루이 13세의 마지막 총신이었다 — 우울한 기질의 왕이 집착에 가까운 열정으로 아꼈던 젊은 동반자. 리슐리외 자신이 생크마르를 왕의 곁에 배치했다. 왕의 감정을 통해 군주를 조종하려는 의도였다. 훗날 추기경이 인정했듯이, 그것은 그의 생애 최대의 오판이었다.
그 젊은이는 젊음 특유의 무모함으로 자신의 후원자에게 등을 돌렸다. 그는 프랑스의 숙적인 스페인과 공모하여 리슐리외를 암살하고 굴욕적인 평화 조약을 강요하려 했다. 추기경의 첩자들이 생크마르의 서명이 담긴 조약문을 가로챘을 때, 총신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왕의 눈물 어린 탄원조차 그를 구할 수 없었다.
그날 파리의 성당에 모인 조문객들이 알지 못했던 것이 있다 — 리슐리외 자신도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기경의 몸은 결핵과 궤양으로 망가져 있었고, 재판을 주재할 때도 너무 쇠약해 설 수조차 없어 들것에 누운 채였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아마 석 달 남짓. 그러나 그는 이 자리에 있었다. 관용을 베풀 여유가 있는 승자의 빈틈없는 예의를 갖추고서 추도 미사에 참석한 것이다.
💡 리슐리외는 생크마르의 재판 당시 너무 쇠약한 나머지, 들것에 실려 거리를 이동하며 재판을 진행했다. 그의 이동식 침상이 곧 이동식 법정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