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52분, 로켓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도 무너졌다.

칠레 민주주의가 죽은 날: 산티아고에서의 피노체트 쿠데타

전투기가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한 대통령이 항복 대신 죽음을 택한 순간

1973년 9월 11일, 아옌데가 도주를 거부한 가운데 전투기들이 칠레 대통령궁을 폭격했고, 민주주의는 17년간 막을 내렸다.

1973년 9월 11일 오전 7시 55분, 첫 번째 탱크들이 칠레의 우아한 대통령궁 라 모네다 주변으로 진입했다. 궁 안에서 살바도르 아옌데 — 세계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마르크스주의 국가 지도자 — 는 창가에 서서 자신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군부는 밤새 움직였다. 발파라이소의 해군 장교들은 새벽에 항구를 장악했다. 육군 부대들은 산티아고 전역의 도로를 봉쇄했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자, 단 하나를 제외한 모든 라디오 방송국이 군가와 군사 포고문을 내보내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 아옌데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은 이제 페냐롤렌의 벙커에서 쿠데타를 지휘하고 있었다.

아옌데는 철수를 거부했다. 칠레를 떠나는 안전한 통행을 제안받자, 그는 대통령은 도망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스웨터 차림으로 라 모네다에 도착했고, 한 보좌관이 헬멧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딸 베아트리스는 그의 곁에서 소총에 탄약을 장전했다. 수천 명의 군인들이 건물을 포위한 가운데, 남은 충성파는 사십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오전 11시 52분, 두 대의 호커 헌터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궁 위를 날았다. 첫 번째 로켓이 북쪽 정면을 관통했다. 그리고 또 한 발. 또 한 발. 총 열여덟 발의 로켓이 한 세기 넘게 칠레 민주주의가 숨 쉬던 건물을 찢어발겼다. 부서진 창문 사이로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건물 안에서는 화염이 화려한 복도를 집어삼키는 동안 수비대가 뒤집어진 가구 뒤에 웅크리고 있었다.

💡 아옌데의 시신 곁에서 발견된 AK-47은 피델 카스트로가 직접 선물한 것으로, '피델이 친구 살바도르에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