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군은 북군 병사들이 100야드 앞까지 행군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격을 개시했다—그리고 첫 번째 공격 대열은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앤티텀 함몰 도로: 4시간 만에 5,000명이 쓰러진 곳

미국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하루, 그리고 '피의 도로'가 된 농로

수십 년간 마차가 지나다니며 파인 농로가 죽음의 덫이 되었고, 남북전쟁 최악의 유혈 참극이 벌어진 그날, 단 4시간 만에 5,000명의 미국인이 쓰러졌다.

메릴랜드주 샤프스버그 상공의 아침 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 능선을 넘어선 첫 번째 북군 병사들의 눈앞에 그것이 펼쳐졌다: 수십 년간 마차 바퀴에 깎여 자연스러운 참호가 되어버린 낡은 농로. 그 웅덩이 속에서 D.H. 힐 사단 소속 2,600명의 남군 병사들이 소총을 겨눈 채 기다리고 있었다.

1862년 9월 17일, 이후 미국 군사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단 하루로 기록될 그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윌리엄 프렌치 장군의 사단이 열병식장에서나 볼 법한 대형을 갖추고 다가왔다. 총검이 햇빛에 번뜩였다. 남군은 푸른 군복의 대열이 100야드 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사격을 참았다. 그리고 함몰 도로가 불을 뿜었다. 첫 번째 북군 공격 대열은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연대가 연대를 이어 사지로 돌격했고, 매번의 공격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흙으로 된 방벽에 산산이 부서졌다. 시신이 세 겹으로 쌓여갔다.

제1 버지니아 연대의 이등병 존 둘리는 그 참상을 잊을 수 없는 선명함으로 기억했다: "미니에탄이 우박처럼 우리 주위를 날아다녔고, 땅은 말 그대로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들로 뒤덮였습니다." 그날 아침 두 발의 총상을 입은 북군의 프랜시스 발로 대령은 훗날 자신의 부하들이 반란군의 일제 사격 앞에서 "녹아내리듯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회고했다.

💡 사진작가 알렉산더 가드너가 이틀 후 도착해 미국 역사상 최초로 공개된 전쟁 사망자 사진을 촬영했는데, 그 이미지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뉴욕 타임스》는 사람들이 망연자실한 침묵 속에서 사진을 바라보았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