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에 황홀경을 새겨 넣던 그 손이 이제는 떨리고 있었다. 81년 세월의 무게만이 남은 채, 모든 것이 비워진 손이었다.

스스로 파멸을 조각한 예술가: 잔로렌초 베르니니의 몰락

로마 최고의 예술가가 성 베드로 대성당과 자신의 명성을 거의 무너뜨릴 뻔했을 때

바로크 시대 로마의 가장 위대한 조각가 베르니니는 찬란한 승리와 충격적인 공개적 실패로 점철된 삶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1680년 9월 20일, 비아 델라 메르체데의 소박한 집에서 바로크 로마의 얼굴을 빚어낸 한 남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여든한 살의 잔로렌초 베르니니는 한 세기에 걸친 예술적 천재성과 인간적 나약함을 정의한 승리와 스캔들의 메아리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베르니니의 죽음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의 충격적인 몰락을 목격해야 한다.

40년 전인 1641년,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남쪽 종탑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황 우르바노 8세의 후원 아래 베르니니가 설계하고 건설 중이던 바로 그 종탑이었다. 금은 로마 궁정 전체에 속삭이는 고발처럼 퍼져나갔다. 기술자들이 기초를 점검했다. 판정은 참혹했다. 베르니니가 계산을 잘못한 것이다. 건물 전체가 불안정했다.

베르니니의 위대한 보호자였던 우르바노 8세가 164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후계자 인노첸시오 10세는 라이벌 팜필리 가문 출신으로, 바르베리니 교황이 총애하던 예술가에게 어떤 호의도 품지 않았다. 조사위원회가 소집되었다. 베르니니의 적들이 늑대처럼 주위를 맴돌았다. 1646년, 종탑은 철거 명령을 받았다. 기독교 세계 최고의 조각가는 자신의 건축적 야망이 잔해로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 베르니니는 한때 공식적으로 경쟁에서 배제된 후, 의뢰를 따내기 위해 은으로 만든 분수 모형을 교황의 개인 거처에 몰래 들여보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