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회전과 샌드위치를 사러 간 짧은 순간이 한 청년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 대가는 전 세계가 치렀다.

사라예보의 한 발의 총성: 단 한 번의 암살이 어떻게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는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총탄이 합스부르크 왕위 계승자를 죽이고 대륙 전체를 불태우다

1914년 6월 28일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은 불과 몇 주 만에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켰고, 1,7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20세기 전체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1914년 6월 28일 아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 소피는 최근 합병된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의 거리를 오픈카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여섯 명의 공모자들이 차량 행렬이 지나갈 경로를 따라 배치되어 있었고, 이들은 '검은 손'이라 불리는 세르비아 비밀결사로부터 폭탄과 권총을 제공받은 상태였다.

첫 번째 암살 시도 — 대공의 차량을 향해 던져진 폭탄 — 는 차체에 튕겨 나가 뒤따르던 차량 밑에서 폭발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그대로 시청 환영식에 참석했고, 이후 부상당한 장교들을 문병하겠다고 고집했다. 변경된 경로에 익숙하지 않았던 운전사는 그만 잘못된 거리로 접어들고 말았다.

놀라운 우연의 일치로, 차량은 공모자 중 한 명인 열아홉 살 가브릴로 프린치프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이미 암살을 포기하고 샌드위치를 사러 델리 가게에 들른 참이었다. 불과 1.5미터 거리에서 프린치프는 두 발을 발사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경정맥에, 소피는 복부에 총을 맞았다. 두 사람 모두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6주도 지나지 않아 유럽 대부분이 전쟁에 휩싸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보낸 최후통첩은 러시아의 동원령을 촉발했고, 이는 독일의 선전포고로 이어졌으며, 독일의 선전포고는 프랑스의 동원령을 불러왔고,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자 영국이 참전하게 되었다. 1918년 11월까지 천만 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유럽의 지도는 완전히 다시 그려졌고, 네 개의 제국이 무너졌다.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것 — 러시아 혁명, 히틀러의 부상, 제2차 세계대전, 냉전 — 은 사라예보의 그 순간으로부터 흘러나왔다.

💡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암살 당시 19세 11개월이었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법에 따라 사형을 면할 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어린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