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군 만 명 대 페르시아군 2만 5천 명. 그리스는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마라톤: 전설이 된 질주

수적 열세의 그리스군, 페르시아 제국을 격파하다 — 그리고 스포츠 전통을 탄생시키다

기원전 490년,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 놓인 그리스군은 천재적인 전술로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했고, 이는 마라톤 전령의 전설로 이어졌다.

기원전 490년 9월, 약 2만 5천 명 규모의 페르시아 원정군이 아테네에서 북쪽으로 26마일 떨어진 마라톤에 상륙했다. 그들의 목표는 아테네를 정복하고, 페르시아 지배에 맞선 이오니아 반란을 지원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었다. 아테네군은 고작 만 명 남짓. 그들은 전령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를 140마일 떨어진 스파르타로 보내 지원군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종교적 의무를 이유로 거절했다.

아테네의 장군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다. 밀티아데스(Miltiades) 장군은 수비가 아닌 공격을 주장했다 — 대담한 도박이었다. 그리스군은 전열을 페르시아군과 맞먹을 만큼 늘린 뒤, 의도적으로 중앙을 약화시키고 양 측면을 강화했다.

전투는 약 한 시간 만에 끝났다. 페르시아군의 공세에 그리스군의 약한 중앙은 뒤로 밀려났지만, 강력한 양익이 페르시아 측면군을 궤멸시킨 뒤 안쪽으로 선회하여 페르시아 중앙을 포위했다. 페르시아군은 무너져 배를 향해 도주했고, 그리스군은 바다까지 추격했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페르시아군 6,400명이 전사한 반면 그리스군 전사자는 192명에 불과했다.

전설에 따르면, 페이디피데스는 이후 26마일을 달려 아테네로 돌아가 "네니케카멘(Nenikekamen)" (우리가 이겼다)이라는 한마디를 외치고 탈진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현대 역사학자들은 이 이야기의 진위를 의심하지만, 이 전설은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마라톤 경기가 탄생하는 영감이 되었다.

💡 1896년 올림픽 마라톤은 스피리돈 루이스(Spyridon Louis)라는 그리스 양치기가 우승했는데, 그는 경기 도중 길가 주막에 들러 와인 한 잔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그는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