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공화국을 구하기 위해 그를 죽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공화국을 멸망시켰다.

3월의 이데스: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암살

왕의 등장을 두려워한 원로원 의원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23차례 찔러 죽이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가 왕이 될 것을 두려워한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로마 원로원에서 23차례 칼에 찔려 암살당했다. 그러나 이 암살은 내전을 촉발시켰고, 결국 공화국의 종말을 가져왔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 3월의 이데스 —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의 폼페이우스 극장으로 향했다. 스스로를 '리베라토레스(해방자들)'라 칭한 60명의 원로원 의원들은 이미 수 주 전부터 그의 암살을 모의해왔다. 그들은 카이사르가 왕을 선포하여 자신들이 신성시하던 공화국을 폐지하려 한다고 믿었다.

카이사르가 자리에 앉자, 원로원 의원들이 그를 에워쌌다. 한 의원이 그의 토가를 움켜잡았고, 또 다른 의원이 그의 목을 찔렀다. 뒤이은 난투 속에서 카이사르는 23차례나 칼에 찔렸다. 후에 실시된 부검 — 역사상 최초의 부검 중 하나 — 에 따르면, 치명상은 가슴을 관통한 두 번째 상처뿐이었다. 카이사르는 최초의 공격에서는 살아남았을 수도 있지만, 뒤이은 집단 공격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그날의 영원히 기억될 장면들: 카이사르가 존엄하게 죽기 위해 토가로 몸을 감싼 모습, 그리고 — 아마도 후대에 덧붙여진 이야기일 수 있으나 — 가까운 친구였던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암살자들 사이에 있는 것을 보고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말한 장면.

공모자들은 감사와 찬사를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내전이었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에는 18세의 종손 옥타비아누스가 양자이자 후계자로 지명되어 있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장례 연설을 통해 여론을 공모자들에게 불리하게 돌렸다. 대부분의 공모자들은 2년 안에 목숨을 잃었다.

💡 카이사르의 상처를 검시한 의사들에 따르면, 23군데의 자상 중 치명상은 단 한 군데뿐이었다. 나머지는 혼란에 빠진 공모자들이 서로를 찌르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