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생명의 비밀을 풀었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한 또 다른 과학자가 있었다 — 그녀는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다.

이중 나선: 생명의 비밀을 풀다

왓슨과 크릭, DNA를 해독하다 — 그리고 그들이 사용한 연구의 주인공이었던 여성 과학자

1953년 왓슨과 크릭이 발표한 DNA 이중 나선 구조는 유전의 신비를 풀어냈다 — 그러나 그 일부는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X선 데이터를 그녀 몰래 사용한 것이었다.

1953년 4월 25일, 《네이처》는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제안한 900단어짜리 논문을 게재했다. 간단한 도식과 함께 실린 이 논문은 해당 구조가 "유전 물질의 복제 메커니즘을 시사한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그 절제된 표현은 역사적인 것이었다. DNA의 이중 나선 — 상보적 염기쌍으로 결합된 두 가닥의 뉴클레오타이드가 나선형으로 감겨 있는 구조 — 은 유전 정보가 어떻게 복제되고, 저장되며, 부모에서 자손으로 전달되는지를 완벽하게 설명해주었다. 이는 과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발견의 이면에는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X선 결정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사진 51'이라 불리는, 당시까지 촬영된 DNA X선 회절 이미지 중 가장 선명한 사진을 찍어냈다. 그녀의 동료 모리스 윌킨스는 그녀의 동의나 허락 없이 이 이미지를 왓슨에게 보여주었다. 왓슨과 크릭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그녀의 미공개 데이터에 접근했고, 이를 자신들의 모델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로 사용했다.

프랭클린은 195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왓슨, 크릭, 윌킨스가 이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기 4년 전이었다. 노벨상은 사후에 수여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그녀가 마땅히 인정받았어야 한다고 믿는다. 과학사의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에 대한 그녀의 공헌은 수십 년간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 있었다.

💡 이 논문은 정확히 900단어였으며, 과학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중 하나다. 왓슨과 크릭은 단 6주 만에 이 논문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