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지워버릴 도시들을 결정하는 위원회가 1945년에 소집되었다.
도시들을 증발시킬 결정: 트리니티 실험 승인
미국, 전쟁의 역사를 영원히 바꿀 준비를 하다
1945년 4월, 미국은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사용을 승인했고,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이어져 2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다.
1945년 4월, 독일의 패망이 기정사실화되고 태평양 전선에서는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전쟁이 계속되던 때, 미국 관리들은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로 귀결될 결정들을 내리고 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 — 핵무기 개발을 위한 20억 달러 규모의 극비 계획 — 는 최고조에 달했을 때 13만 명 이상의 인력을 고용했다.
트루먼 행정부 내에서 도덕적, 전략적 논쟁은 치열했다. 군사 전략가들은 일본 본토 침공 시 최대 100만 명의 미군 병사가 사망할 수 있으며, 일본인 사망자는 그 몇 배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원자폭탄은 아무리 끔찍할지라도 전쟁을 단축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레오 질라드를 포함한 일부 과학자들은 경고 없이 도시에 폭탄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돌렸다. 반면 J.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포함한 다른 이들은 폭탄 사용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목표물 선정 위원회는 일본의 문화 수도인 교토는 제외했지만, 군사적 중요성과 규모를 고려하여 히로시마, 나가사키, 고쿠라, 니가타를 주요 목표로 지정했다.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하고, 8월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폭탄이 투하되면서 핵의 시대가 도래했다. 원자폭탄 사용 결정은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논쟁되는 도덕적 선택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나가사키에 투하된 폭탄은 플루토늄 폭탄으로,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폭탄과는 다른 설계였다. 고쿠라가 원래 1차 목표였으나 구름에 가려져 화를 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