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전쟁을 끝내기 위해 기획된 왕실 결혼식이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종교 학살의 방아쇠를 당겼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기독교 프랑스가 스스로를 집어삼킨 날
왕실 결혼 축제가 수만 명의 학살로 변하다
1572년, 왕실 결혼식 이후 개신교 지도자들을 표적으로 삼은 살해가 시작되었고, 이는 수 주에 걸쳐 최대 3만 명의 프랑스 위그노를 학살하는 전국적인 참극으로 번졌다.
1572년 8월 24일 —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 새벽, 파리의 교회 종소리와 함께 폭력이 시작되었다. 몇 시간 만에 프랑스 수도의 거리는 피로 물들었다. 가톨릭 폭도들과 왕실 병사들에 의한 위그노(프랑스 개신교도) 학살은 수 주간 계속되었고, 파리에서 지방으로 번져 5,000명에서 30,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배경에는 왕실 결혼식이 있었다. 개신교 지도자 앙리 드 나바르가 불과 엿새 전 가톨릭 공주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 결혼한 것이다. 프랑스의 대립하는 종교 세력을 화해시키기 위해 기획된 결혼이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오히려 위그노 귀족 지도자들을 파리로 불러모았고 — 그들은 손쉬운 표적이 되고 말았다.
왕모(王母)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어린 국왕 샤를 9세에게 위그노 지도자 가스파르 드 콜리니가 왕권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확신시켰다. 왕은 콜리니의 암살을 명령했다. 그러나 암살 시도가 실패하고 콜리니가 부상만 입은 채 살아남자, 결혼식에 모인 모든 위그노 지도자들을 제거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계획된 정치적 살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수십 년간 종교적 증오로 물든 파리 군중들이 눈에 보이는 개신교도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체들은 센 강에 던져졌다. 가톨릭 신자를 구별하기 위해 집집마다 십자가 표시가 그려졌다.
💡 앙리 드 나바르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목숨을 건졌다 — 그러고는 다시 개신교로, 그리고 다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되었으며, 훗날 개신교도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