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자신의 고통을 무기로 삼았다. 그리고 성공했다.
서프러제트의 비밀 무기: 단식 투쟁과 강제 급식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 자신의 몸을 무기로 삼다
1909년, 영국 서프러제트들은 단식 투쟁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두거나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수밖에 없었고, 어느 쪽이든 강력한 선전 도구가 되었다.
1909년, 영국 서프러제트 운동은 새롭고도 충격적인 전쟁터를 발견했다. 바로 수감된 여성들 자신의 몸이었다. 마리온 월리스 던롭은 의회 세인트 스티븐스 홀 벽에 권리장전의 한 구절을 찍어 체포된 후, 1909년 7월 5일부터 모든 음식을 거부하며 정치범으로서의 인정을 요구했다. 그녀는 91시간 만에 석방되었다.
이 전술은 팽크허스트가 이끄는 여성사회정치동맹(WSPU)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유리창 파손, 방화, 우체통 폭파 등 점점 더 과격한 시위로 투옥된 수십 명의 여성들이 단식을 시작했다. 정부는 불가능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여성들을 죽게 내버려 두어 순교자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강제로 음식을 먹여 고문이라는 비난을 감수할 것인가.
영국 정부는 강제 급식을 선택했다. 교도소 의사들은 여성들이 발버둥 치고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고무 튜브를 콧구멍을 통해 위장까지 삽입하고 액체 영양분을 주입했다. 이 시술은 극심한 고통을 수반했고, 때로는 흡인성 폐렴을 유발하기도 했다. 생생한 증언들이 대중에게 알려지자, 여론은 서프러제트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정부는 결국 "고양이와 쥐 법"을 통과시켰다. 단식 투쟁 중인 수감자들이 위독해지면 석방하여 집에서 회복하게 한 뒤, 다시 체포하는 방식이었다. 이 운동의 가장 유명한 순교자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은 1913년 엡섬 더비 경마장에서 국왕의 말발굽 아래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완전한 참정권은 1928년에야 실현되었다.
💡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은 1911년 인구조사의 밤, 의회 건물 안 벽장에 몰래 숨어들었다. 그녀의 공식 주소가 하원으로 기록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